고고학적 성서·

우가릿 서사시/겔14:20

제이비젼 2017. 5. 16. 23:23





 구약은 당시의 이방적 요소들을 다수 가미하고 있다. 그것은 성서가 이스라엘의 삶의 자리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당시 근동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과 연구는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고대 근동지역에서 발견된 많은 글들 중에는 성서의 사상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들이 많은데, 어떤 글들은 성서의 내용과 매우 흡사한 경향을 띠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가릿 서사시들인 아캇 서사시나 케렛 서사시, 그리고 바알 서사시들의 내용은 내용들과 단어들에 매우 가까운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가 여러 근동지역들의 문학과 사상, 신학들을 짜집기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다른 많은 자료들이 일관성이 없고 주제가 뚜렷하지 않은 데 비하여, 성서는 그 방대함과 일관성 있는 주제로 인하여 그 어떤 고대의 자료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또한 고대의 여러 자료들이 기록한 신들은 모두 사라진 반면에, 구약의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 


 

  우가릿(Ugarit)은 주전 2000년경에 북시리아의 도시국가 중 가장 번성한 교역의 중심지였다. 일명 라스 샤므라(Ras Shamra)라 불리기도 하는 우가릿은 시리아의 해안을 따라 시돈(Sidon)으로부터 북으로 약 20㎞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은 성경의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마리문서(Mari Letters)와 아마르나(Tell el-Amarna)의 서신에서는 중요하게 언급된다. 1929년 한 농부가 해안에 있는 무덤을 우연히 발견한 이후 이 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의 성과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업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특별히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우가릿의 고대 거민들에 의하여 칭송된 영웅들에 관한 3개의 서사시(Ugarit Epics)이다.


 1. 아캇 서사시(Aqhat Epic)


 1) 아캇 서사시의 내용

 다넬(Danel)왕은 정의를 사랑하며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는 경건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자식이 없었으므로 신전에서 7일을 머무르며 기도하여 아들 아캇을 얻게 되었다. 한편 카디르와 카시스(Kathir and Khasis)라는 신이 애굽에서 북으로 여행하던 중 다넬의 집에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융숭한 대접을 받은 후 그 신은 계속 북으로 여행하였으나 부지중에 여신 아낫(Anat)에게 줄려고 만든 활과 화살을 다넬의 집에 남겨 두었다. 이 활을 취하게 된 아캇은 사냥해서 잡은 첫번째 짐승을 신에게 바친다. 아낫은 아캇에게 부와 영생을 줄 테니 활과 화살을 돌려 줄 것을 제안 하지만 아캇은 이를 거절한다. 이에 아낫은 아버지 엘(El)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고, 엘은 얏푼(Yatpun)을 매로 변하게 하여 힘으로 활을 빼앗으려다 아캇을 죽이게 되고 활도 바다에 빠트리고 만다. 결국 마른 땅에 무죄한 피가 흐르게 되고 활도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2) 성서와의 관련성

 겔14:20에 보면 땅의 의인을 대표하는 3인 가운데 1명으로서 다니엘이 나온다. 우가릿 원전의 많은 어휘들이 구약의 그것들과 비슷하다. 우가릿 자모의 22개의 히브리 자모의 글자들과 일치한다. 겔14:20의 다니엘과 우가릿 서사시의 다넬과의 동일화는 무리이지만 많은 문학적 상관 관계가 있다. 다넬이 기도하여 아들을 얻은 것, 출생 고지의 양식, 신을 대접할 기회를 가진 것, 첫 열매를 신에게 바치는 풍습, 최고 신 엘(El)의 이름 등은 구약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2. 케렛 서사시(Keret Epic)


 1) 케렛 서사시의 내용

 케렛 서사시도 아들이 없는 의로운 왕, 케렛에 대하여 서술한다. 재난의 연속으로 인하여 슬퍼할 때 엘(El)이 그에게 나타나 사정을 묻는다. 부와 왕국의 확장을 얻게 된 케렛 왕은 엘의 지시에 따라 우듬(Udm)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우듬과 파빌(Pabil)의 딸 후리야(Huriya)를 얻기 위하여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출전하기 전에 두로의 여신 아세라(Atherat)에게 후리야를 얻게 해주면 은금을 드리겠다는 맹세를 한다. 후리야를 얻게 된 케렛은 결혼 잔치에서 엘 신으로부터 아들을 낳을 것과 그 아들의 이름은 야십(Yassib)이라고 할 것이며, 막내가 장자의 권리(brithright)를 누릴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7년 동안 후리야는 아들과 딸을 낳으나 케렛은 자기가 한 맹세를 잊어버렸다. 그 결과 케렛은 건강을 잃고 거의 죽게 되었으며 장자 야십은 왕좌를 차지할 꿈만을 꾼다. 그러나 막내 아들인 엘후(Ellhu)는 아버지의 병을 슬퍼한다. 엘 신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한 케렛은 아들 야십을 심판함으로 서사시는 끝을 맺는다.


 2) 성서와의 관련성

 케렛 서사시는 아들이 없는 것을 가장 큰 불행으로 여기는 구약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왕상13:34). 특별히 주의를 요하는 것은 장자가 작은 아들(혹은 막내)에게 복종하는 모티브가 제공되는 것이다. 장자의 상속권의 인정은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케렛 서사시도 보여 준다. 성서에서는 작은 아들 야곱이 형 에서 대신 장자의 권리를 받는다(창25장). 하나님은 이에 대하여 예언한다. 에서의 장자의 기업 매각과 이삭의 야곱 축복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르는 예언 성취적 행동들이다(창25-27장).


 3. 바알 서사시(Baal Epic)


 1) 바알 서사시의 내용

 7개의 토판으로 된 바알 서사시는 바알과 그의 여동생 아낫(Anat)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다의 신 얌(Yam)은 엘에게 집을 요구한다. 자기의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권좌에 앉아 다스림을 의미한다. 이것을 시기한 아스타르(Ashtar)는 바알에게 가서 고발한다. 이후 바알과 얌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은 카디르 카시스의 도움을 얻은 바알의 승리로 끝난다. 바알은 최고의 위치에 서게 되었으나 다스릴 집이 없었다. 엘의 도움으로 집을 얻게 된 바알은 얌을 죽이고, 사망의 신인 모트(Mot) 마저 죽이고 우주를 다스리려 한다. 모트는 지하에 살았으므로 바알은 바람, 구름, 비를 동반하고 지하로 내려간다. 바알의 부재중에 지상에는 기근과 건기가 왔다. 엘은 바알이 지하에 있음에 알고 해의 여신으로 하여금 바알을 지상으로 데려오도록 한다.


 2) 성서와의 관련성

 바알 서사시는 통치권을 의미하는 '신의 집'이라는 모티브를 매개로 하여 전개된다. 성서의 경우에서 솔로몬이 지은 궁전은 그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록 '성소'라는 것이 있기는 하였으나 하나님의 왕권은 장소적 제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부각된다. 이 점에 있어서 구약의 하나님의 통치와 바알 서사시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우가릿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들은 고대 성서 시대를 조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들을 제공한다. 우가릿 서사시는 가나안 원주민들의 종교적 관습과 사상들의 일면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들이 히브리인들의 사고에, 즉 성서의 기록에 직접적으로 원용되었다고 판단하기에는 주의를 요한다. 비록 유사점이 많고 우가릿의 많은 신들의 이름이 성경에 나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성서 기자는 그것을 하나의 배경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행적을 역사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선지자들이 그토록 바알 숭배를 멀리하도록 경고한 이유를 알게 하는 자료가 되는 것이다. 

 


  1. 우가릿과 애굽의 관계


 1929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라스 샤므라는 고대 시리아 지방과 애굽과의 관계를 밝혀 주는 귀한 쟈료들을 제공하였다. 왕실 묘지(Rayal Necropolis)에서 발견된 발 달린 술잔, 물병 등이 애굽의 것들과 매우 흡사하다. 한 벽의 밑부분에서는 녹청으로 잘 보관된 애굽의 매신 호르스(Horus)가 발견되었다. 이 새는 바로의 왕관을 쓰고 있었다. 우래우스(uraeus)라고 부르기도 하는 '신성화된 뱀'은 습관적으로 바로이 머리 장식에 사용되는 심볼이었는데, 여기서는 매의 발톱 사이에 끼여 있다. 왕궁의 남쪽에서는 초록색 돌로 된 스핑크스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이 가슴에는 아멘엠헷 3세(Amenemhet III B.C. 1835-1785)라고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가 라스 샤므라 사원의 신에게 준 봉헌사이다. 아마르나의 편지들에서는 바로가 시리아의 공주들을 후궁으로 맞아들였음을 보여 주는데 이는 우정과 정치적 연합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2. 우가릿의 도서관

 라스 샤므라의 유물 중 가장 큰 발굴은 설형문자로 된 많은 토판들이 출토된 방이다. 대부분의 토판들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언어, 즉 우가릿어로 쓰여져 있었는데, 시기는 아마르나 시대와 비슷하다. 그러나 악카드어(Akkadian)로 쓰여진 토판도 있다. 악카드어는 B.C. 15-14세기경에 근동의 공통어로 바벨론인들이나 앗수르인들에 의해 사용 언어이다. 이 밖에 수메르어, 후리어, 애굽어, 힛타이트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여진 토판들이 발견되었다. 이 문서들은 고대 시리아의 역사와 습관, 가나안 종교의 성격, 우가릿어의 용법으로부터 그 의미가 확실하게 된 성경의 단어에 대한 중요한 지식을 제공한다. 또 알파벳의 초기 형태에 대한 연구에도 중요하다.


 3. 우가릿의 지정학적 위치

 고대의 그리스인들은 우가릿을 류코스 리멘(Leuscos Limen), 즉 '하얀 항구'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이곳에 석회질로 이루어진 바위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가릿은 지중해의 문화가 서아시아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특히 청동기 시대에는 동광석을 싣고 키프로스에서 온 배가 메소포타미아로 가기 위해 이곳에서 정박하였다. 우가릿은 지중해 문화와 수메르-악카드 세계를 잇는 교차로에 위치해 있다. B.C. 200년경에 우가릿은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사이에 있는 거대한 무역의 중심지를 형성하고 번창하였다. 한때 후리족의 침입을 받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우가릿은 애굽의 영향권하에 있었고,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다.


 4. 우가릿의 종교

 우가릿의 종교는 가나안의 종교와 비슷하다. 엘(El) 신은 70여 신들이 아버지이다. 엘의 아내는 아다릿(Athirat) 혹은 엘랏(Elat)인데, 구약에서는 아세라(Asherah)로 나타난다. 바알(Baal)은 가장 인기가 있는 신으로 다산신이며, 구름과 비를 움직인다. 바알은 가끔 '땅의 주' 즉 '세불'(Zebul)로 나타난다. 바알은 죽음의 신 모트(Mot)와 대적하여 이기며, 또한 머리가 일곱인 괴물 로탄(Lotan, 바다의 신 Yam)을 죽인다. 구약의 리워야단(사27:1 Leviathan)은 로탄의 변형이다. '처녀 아낫'(the Virgin Anat)은 바알의 여동생 혹은 아내이다. 바알이 땅 밑에 갇혀 있을 때 해이 여신의 도움을 받아 바알을 구출한다. 우가릿의 신들의 이야기는 '거룩한 땅'의 역사와 지리 위에 그들의 흔적을 남겼다. 성서 기록자들은 우가릿과 가나안의 신화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야훼 신앙에 복속시켰다. 엘리야뿐만 아니라 창세기에서도 바알에 대한 제사 및 우상숭배는 금지되고 있다. 우가릿 신화에 나오는 카디르와 카시스(Kathir and Khasis)는 건축과 공예의 신인데, 성경에 나오는 가인의 후예들과 비견된다(창4장).


 5. 고엘의 개념

 이스라엘에서 구속자의 개념인 '고엘'(goel)은 두 가지 기능이 있다. 가족의 한 사람을 살해한 데 대한 복수의 책임과 가족에 속한 재산을 찾아야 하는 책임이 구속자에게는 있다. 룻의 이야기에서 보아스는 후자의 개념에 속하는 고엘이다. 우가릿의 서사시에도 고엘의 개념이 들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죽은 영웅 바알의 여동생은 고엘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녀는 "나는 나의 오라비를 죽인 자를 죽이겠다 나는 나의 어머니의 아들을 없애버린 자의 생명을 끊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이는 단순한 복수심의 발로이기보다는 고엘 개념이 적용된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 서도 구약과 우가릿의 세계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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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서




성서에 등장 않지만 문자발달로 성서시대 백업자료 남겨 

가나안 땅의 몇몇 유적지 중에는 성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시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를 이스라엘과 공유하고 있어 우리에게 성서 배경 지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도시들이 있다. 특히 오늘날 시리아에 속해 있는 우가릿과 에블라 같은 도시국가들에서 가나안 사람들의 일상과 언어 그리고 신화 등을 담고 있는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항구도시, 우가릿 

우가릿은 이스라엘 북쪽 지중해변에 있는 라스 샴라라 불리는 곳이다. 
오늘날 북부 시리아에 위치해 있지만 고대 아람 사람들의 땅은 아니었다. 아람이 번성하기 이전 이미 주전 1200년경 폐허가 되어 버린 장소였다. 우가릿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연결되는 항구 기능을 가진 중요한 도시로서 그 역사는 주전 6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였던 이유로 여러 문명의 교류가 있었던 항구라는 특징은 다양한 문화들의 영향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가릿에서는 이집트의 예술적 기조와 함께 그리스 미케네와 지중해변의 
키프로스 섬에서 제조된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주전 2000년경에는 이집트 왕들과 교류한 흔적도 있다. 도시국가로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주전 1450년부터 1200년으로 ‘바다 사람들’ 혹은 우리가 흔히 에게 문명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블레셋이라고 부르는 이들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우가릿 언어와 신화

항구도시였던 우가릿에서 무역이 발전했으리라는 것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역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상거래를 기록할 수 있는 문자의 발전을 가져왔다. 우가릿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처럼 북서-셈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전 1400년경부터 그들의 언어를 기록할 수 있는 문자체계를 완성했다. 그들의 문자는 언뜻 보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그리고 아카드어라 불리는 쐐기문자 형태로 생겼으나 알파벳이 없는 메소포타미아의 문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우가릿어는 30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법적인 면에 있어서 그리고 발음적인 면에 있어서 가나안어(베니게어 아람어 히브리어 등)와 유사하다. 성서 히브리어처럼 우가릿어는 남성과 여성의 정확한 성은 물론 단수, 복수, 쌍수 등 수의 구별이 있다. 또한 형용사가 명사의 뒤에 가고 문장은 동사, 주어, 목적어의 어순을 따르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우가릿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점토판에 기록된 것으로 경제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문서들 중에는 법적 내용과 서시, 그리고 편지 등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가릿의 문서 가운데 유명한 것은 가나안 신화가 담겨 있는 문서다. 이미 다루어졌던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신들이 우가릿에서 발견된 신화에 등장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우가릿의 서-동쪽 구역에서는 바알 신전과 다곤 신전 그리고 궁전 서고가 발견되었다. 신전 구역에서 발견된 유물들 중에는 여러 신상과 제사용 용기들 그리고 23개의 석상이 있다. 석상들 중에는 번개를 들고 있는 9개의 바알 신상이 있었다. 서고에서 발견된 문서 들 중에는 지난 호에 언급했던 바알과 바다의 신 얌 그리고 죽음의 신 못이 어떻게 신들의 전쟁을 치르고 권력을 잡게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1929년 발견된 우가릿 문서들은 처음으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와 신앙을 세상에 드러냈다. 성서학자들은 이 문서를 통해 가나안 신화를 연구하기도 하지만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고 유사한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문헌이기에 성서 히브리어와 영향을 미친 문학적 요소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에블라 문서, 셈어로 기록된 최초의 문서

우가릿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고 내륙에 더 가까운 곳에 있었던 에블라는 
주전 2500∼2000년 그리고 주전 1800∼1650년 단 두 번의 시기 동안만 사람들이 살았던 장소다. 특별히 후자보다 전자의 시대가 훨씬 번성했으며 아카드의 나람-신(Naram-sin) 왕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보인다. 에블라는 이미 이집트와 수메르 문헌들에서 상업도시로 자주 등장하곤 했지만 1964년부터 시행된 이탈리아 로마 라 사피엔자 대학에서 발굴을 통해 현재 텔 마르디크(Tell Mardikh)라 불리는 유적지였음이 밝혀졌다. 발굴에서는 궁전과 함께 2500여개의 쐐기문자가 기록된 점토판들이 발견되었다. 이 점토판들은 대부분 수메르어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그중 일부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쐐기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처음 학자들은 이 문자를 해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발굴된 토판들 중에 이 독특한 문자로 구성된 단어와 수메르 단어들과 비교할 수 있는 단어장 형태의 토판들이 있어 이 문자가 에블라에서 기원한 문자임을 알 수 있었다. 에블라어는 셈어 중 동쪽 지역에서 주로 사용한 언어로 아카드어와 유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학자들의 주의를 끈 것은 이 문서들이 발견된 장소다. 처음 장소가 
발견되었을 때는 궁전의 도서관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법률문서와 행정, 무역 등을 기록한 문서를 보관한 서고임이 밝혀졌다. 이 서고에는 마치 현대의 책장처럼 나무로 만들어진 선반들이 있었고 각 주제에 맞추어 토판들이 정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상업도시였던 에블라의 특징상 문서의 많은 부분은 경제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성서시대의 중동 지역의 문화와 정치 그리고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성서 배경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당시 에블라에는 20만 마리의 가축떼를 보유하고 있었고 주요 수출품은 목재와 섬유로 상당히 부유한 도시였다. 이 도시의 부는 궁전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궁전에서는 자개를 한 가구와 금으로 만든 장신구, 다양한 보석으로 장식한 조각상들이 발견되었다. 

에블라 문서에는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유사한 셈어 이름들이 발견되는데 
그중에는 아담, 아브라함, 빌하, 에서, 사울, 이스마엘 등이 있다. 또한 예루살렘, 하솔, 라기스, 게셀, 므깃도, 우르 같은 성서 도시들의 이름도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 문서에 등장하는 신들은 수메르의 신들과 함께 다간, 이쉬타르, 하다드 등의 가나안 신들로 40종류의 신들에게 제사가 드려졌다. 도시의 4개 성문들에 붙여진 이름 중에는 다간과 바알이 있다. 한때 학자들은 에블라 문서에서 가나안 최고의 신인 엘이 ‘야(Yah)’라 불리면서 ‘여호와(YHWH)’로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재 이 두 이름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으며 에블라 문서에서 ‘야’라는 신을 위한 제사는 전혀 없었음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