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교부들/요1;1
사도 시대 이후에 교회의 정통성을 이어간 초기의 교부들은 비록 그 영성에 있어서 주님과 직접 대면했던 사도들보다 뒤떨어졌지만, 그 신앙과 신학적 정열은 그들 못지 않게 대단했다. 흔히 이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지는데, 첫 부류는 헬라 교부들로,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엔 등이 있으며, 둘째 부류인 라틴 교부들로는 터룰리안, 씨프리안 등이 있었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삶의 자리에서 체험한 경험과 지식들을 바탕으로 각기 고유한 신학 발전에 공헌하였다. 그러므로 주로 사변적인 헬라 교부들의 사상과, 실제적 경향을 띤 라틴 교부들의 신학 사상은 서로 보완되면서 교회의 일치된 신학을 구축해 나갔던 것이다. 이처럼 교회의 사상은 교부들의 다양한 영성과 재능으로 말미암아 더욱 풍성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간이 흐르면서 이후의 교부들은 차츰 신학적 개인화와 세속화의 경향을 띄게 되었다. 그 결과 카톨릭은 점점 성서가 말하는 신학과 너무 동떨어진 사상을 갖게 되었다.
사도적 교부, 즉 속사도 시대의 신학은 모두 한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 누구도 기독교 진리 전체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2세기말의 변증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2세기말의 말시온과 영지주의자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정통교리의 체계를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비교적 전반적인 기독교 진리의 해석을 시도하는 저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 헬라 교부
1) 이레니우스(Irenaeus)
이레니우스는 130년경 서머나에서 태어났으며, 폴리갑의 제자였다. 그는 헬라 고전과 신·구약성경에 정통한 학자로서 리용의 감독으로 일하다가 순교하였다. 그의 두 저서, 「소위 영지주의에 대한 고발과 논박」, 「사도적 가르침의 논증」이 아직도 현존하고 있다. 「소위 영지주의에 대한 고발과 논박」은 신앙문제에 있어서의 철학적 사변을 반대하면서 하나님은 사색을 통해서가 아니라 계시를 통하여 알려진다고 하였다. 창조의 하나님과 구원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다. 첫 아담은 불순종과 범죄로 영생을 잃었는데, 제2의 아담인 예수는 아담이 잃은 것을 회복하였다. 또한 신약과 구약은 동등한 가치가 있는 성경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그의 신학은 개인적 의견보다는 성경과 교회의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2)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이교도 출신인 클레멘트는 아테네에서 태어나 지혜를 추구하는 여행 중 알렉산드리아에서 판테누스를 만났다. 그는 여기서 자신이 추구하던 빛과 영감을 발견하고 신학과 철학을 배웠으며 190년에 그를 계승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이교도에게 보내는 권면」, 「선생」(The Instructor) 등의 5권이 있다.
클레멘트는 기독교의 진리와 헬라 철학의 진리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복음을 이해하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 곧 로고스가 그리스도에게서 화육했다고 가르쳤다. 헬라인들은 자신들의 철학으로 진리를 말했으며, 그들이 얻은 지식은 기독교 신자들의 믿음을 더 깊이 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며, 그런 지식을 얻은 사람이 참된 영적 지혜자라고 하였다. 이렇게 클레멘트는 영지주의의 이름으로 영지주의를 공격했다.
3) 오리겐(Origenes)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학자였다. 그는 항상 자신을 성경해석자로 여겼으며 위대한 저서들을 많이 남겼다.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헥사플라」(Hexapla), 「스콜리아」(Scholia), 「설교집」(Homilia) 「주석집」(Commentaries) 등이 있다. 그의 신학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신앙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도들과 교회의 전통에 어긋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① 창조교리 : 창조주와 피조물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으므로 직접 성부께서 창조하실 수 없어서 성자를 출생해야만 하셨다. 이처럼 성자의 출생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세상이 창조된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의 전능을 행사할 세상이 영원히 있어야 했다. 이에 영원한 성자께서는 성부께서 그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원한 세계를 창조하셨다. 영원한 세계는 영들의 세계인데, 자유를 악용한 영들은 악령이 되었고, 천사처럼 선용하지도, 악용하지도 않은 제3의 영들은 인간이 되었다. ② 구원교리 : 범죄한 인간은 죽음 다음에 깨끗케 하는 불에 연단된 뒤에 원상복귀된다. 모든 죄인은 악령들까지도 로고스의 깨끗케 하시는 능력으로 결국은 구원을 받는다. 그 다음 그리스도의 재림과 모든 인간들의 영적 부활이 있게 되고, 만물의 회복이 따른다. 이 오리겐의 사상, 즉 영혼선재설이나 만물 회복설은 지나친 사색주의에서 유래된 헬라 철학적인 기독교 교리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2. 라틴 교부
1) 터툴리안(Tertullianus)
150년경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출생한 터툴리안은 법학을 공부한 법률가였다. 193년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복음의 변증과 선포에 헌신하였다. 그는 「변명」(Apology), 「이방인들에게」(To the Gentiles), 「이단을 논박하는 취득시효」(Prescription Against Heretics), 「프락시스 논박」(Against Praxeas) 등의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그는 철학과 신학을 분명하게 구분하였고, 죄를 법률적인 입장에서 보았다. 범법자인 인간은 죄보다 더 큰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은총에 근거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그의 공헌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이 삼위일체 형식은 삼위일체론의 궁극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했으며, 기독론의 형식도 어느 정도까지는 이러한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2) 씨프리안(Cyprianus)
터툴리안 다음가는 카르타고의 신학자인 씨프리안은 3세기초에 태어났다. 그는 본래 수사학자로서 중년기에 개종하여 카르타고의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순교했다. 주요 저서로는 「교회의 일치에 관하여」(On the Unity of Church), 「타락한 자들에 관하여」(On the Lapsed) 등이 있다. 그는 교회의 분열은 박해보다도 더 교회에 해를 끼치고 신앙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사단의 장난이라고 하였다. 그는 특별히 교회론의 신학자였는데, 감독교회 교리의 초석을 쌓았다. 감독을 교회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보았고 교회 안에 있지 않으면 그 누구도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교회를 떠나서는 세례도 성찬도 참된 순교도 없다는 것이다.
3. 헬라 교부와 라틴 교부의 신학적 차이
헬라 교부들은 플라톤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며, 사변적인 것이 그들 신학의 특성이었다. 그들은 말씀이 인간 영혼에 들어와서 말씀과 육신이 결합된 것이 성육신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플라톤적 사상의 영향이었다.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우의적 해석에 치중하였다.
라틴 교부들은 고대와 중세를 연결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지닌다. 이들의 관심은 실용적인 데 있었고 교회제도나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교리에서는 죄, 구원, 속죄론 등에 주안점을 두었고, 해결책도 역시 법적 성격을 띠었다.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이나 취득시효 등의 예가 이를 증명해 준다. 이렇게 실천적인 데 관심을 둠으로써 교회론이 크게 대두되었다.
1. 이레니우스에 대한 평가
이레니우스는 최초의 교부로서 사도 시대와 속사도 시대 그리고 변증가들의 시대를 요약하고 있다. 또 3세기와 4세기 교부들로 잇는 교차로에 서 있다는 점에서 역사신학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변증가들은 대의 사상을 상대로 기독교 변증에 관심을 두었다. 이에 비해 이레니우스는 실제적인 교회 목회자로서 노스틱주의가 교회의 신앙을 혼란케할 무렵에 이에 대하여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 확립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또한 이레니우스의 교회사적 중요성은 헬라 교부이면서도 서방에서 활동하여 라틴 신학의 기초를 놓음으로 헬라 신학과 라틴 신학의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소아시아 출신으로 폴리갑의 성경적 신학의 전통을 가지고 서방 신학의 기초를 놓았는 데 의의가 있다.
이레니우스는 로마의 장로 히폴리투스와 칼타고의 터툴리안에게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로마의 히폴리투스 작품에서 이레니우스 글이 직접 인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어떤 면에 있어서 이레니우스는 라틴 신학의 원조 터톨리안의 직접적인 사상적 원조라고 할 수 있다.
2. 클레멘트의 신관
그는 플라톤의 영향을 따라 신을 부정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즉 하나님은 속성이 없으시고 본질의 범주를 넘어서 계시며, 정의 내릴 수 없는 분이므로 무엇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플라톤의 신관을 답습하기보다는 성경의 삼위일체 신관과 조화시키려고 한다. 지식은 근원이며 전창조의 원리가 되시는 하나님 다음의 존재가 계시는 데 그분이 곧 로고스이다.
그는 죄를 속하는 자시오, 구주시오, 자비시오, 하나님의 말씀이시오, 참으로 가장 분명하게 신이신 분이요, 우주의 대주재와 동등된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이 로고스는 하나님 안에 계셨으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신 참된 투사이며 피조물과 함께한 투사이다.
이 로고스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신 언약의 선포자요, 화목자시오, 우리의 구주시오, 말씀이시오, 생명의 샘이시오, 화평을 주시는 자다.
클레멘트는 로고스가 삼위일체의 제2위의 존재라는 암시를 주고 있고, 그의 신관이 삼위일체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음도 나타난다.
3. 영혼의 선재설
영혼은 잉태와 출생시에 육체에 결합되게 되는데, 그에 앞서 또 그것과 별도로 영혼이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영혼 선재의 믿음이 고대 세계에서 폭넓게 지지되어 왔기 때문에, 플라톤의 작품 속에서도 영혼 선재의 고전적인 표현이 발견되고 있다. 엣센파는 인간의 영혼은 어쩔 수 없는 유혹에 의하여 육체의 감옥에 빠져 그 속에 말려 들어가 있다.
그렇지만 영원하여 가장 희박한 대기 중에 거한다고 믿고 있었다고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교리는 지혜서에서 명확히 등장하고 있다. "나는 좋은 기질을 타고난 어린이였으며 훌륭한 영혼을 받은 아이였다. 이렇게 잘 태어난 나는 육신마저도 깨끗했다"(지혜서8:19-20).
후기 히브리의 랍비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필론(Philon)도 영혼 선재의 교리를 주장했다. 오리겐(Origen)은 이 교리를 영혼의 본성에서부터 추론했는데, 그는 이 교리를 불멸성과 관련시켜 다루고 있다.
4.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
이것은 삼위일체 정립에 대단한 공헌을 한 작품으로 약 213년경 터톨리안이 몬타니즘에 가담한 이후에 기록한 「프락시아스 논박」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프락시아스의 양태론적 삼위일체 개념에 대항하여 본질과 위격이라는 단어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 개념에 근거하여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 삼위의 위격을 구별하면서 동시에 삼위의 통일성을 주장하였다. 그가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를 위격이라는 용어로 설명함으로 이것은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공식용어가 되었다.
그는 성부와 성자가 동질이지만 독립적 위격이며, 본질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말로 substantia를 사용했다. 그가 볼 때 이 세 위격은 하나이며 나눌 수 없는 본질을 소유하면서 방해받지 않고 독립된 3개의 구분된 위격으로 존재한다.
삼위는 위격상 구분되지만 이 구분은 지위에 있어서가 아니라 정도에서, 본질에서가 아니라 형식에서, 능력에서가 아니라 양상에서의 구분이다. "삼위가 한 하나님으로서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이라는 이름 아래 각 위의 정도와 형식과 양상이 식별된다면 삼위 하나님은 본질, 자위 그리고 권능에서 동등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