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윤리/요1:14
우리 나라가 고조선이후 삼한시대와 삼국 시대를 거쳐 통일신라가 한반도를 통치하고 이후 후삼국시대가 형성되기 이전까지 기간 동안,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철학자들이 일어나 사람이 살아가는 목표와 방법론에 관한 윤리사상을 펼치고 있었다.
우주는 상반세력간의 투쟁으로 발생하였고 투쟁 속에 숨겨진 반발조화(反撥調和)가 세계 만물을 지배하는 힘, 곧 로고스라는 법칙임을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한 이래로 로고스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노력이 수세기 동안 진행되었다. 로마인들은 철학을 행동윤리학으로 바꾸었다. 사람은 모두 구원 받아야 하는 죄인으로 인식하면서 오직 절대자의 은총을 입고 구원을 받아 겸손으로 사랑을 행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죄를 지을 수조차 없는 신의 도성에거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렀다.
역사를 시대로 구분할 때 문헌이 있는 가장 오래된 구석기 문명부터 청동기 문명까지 기간을 고대라 부르며, 우리 나라에서는 고조선 시대로부터 삼한 시대를 거쳐 통일 신라가 망하던 때까지에 해당된다. 청동기의 사용과 문자의 발명으로 곳곳에 도시 국가들이 세워지면서 서서히 사상과 문화가 공동체적인 골격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가족 단위의 윤리의식이 범사회적이고 국가적인 범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고대의 사회 생활은 윤리의 기초를 이루는 시대가 되었다. 윤리의 필요성은 신석기 시대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 지대에서 최초의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제기되었다. 이러한 정착 생활이 씨족 공동 사회를 구성하고 토지의 소유와 생산물의 분배, 빈부의 차이 등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며, 이어 집단간의 전쟁이 사회 형성의 기초가 되었다. 사람들은 행동의 목적과 범위를 스스로 제한을 가하게 되었다.
1. 서양 윤리의 시작
희랍인들은 기존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지양하고 윤리의 기초를 '로고스'라는 모든 물질계의 원자에 두었다. 따라서 로고스에 대한 각자의 정의는 윤리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를 '만물을 지배하는 법칙'으로 정의함으로 모든 사고의 기준으로 정착시켰다. 로고스 개념을 윤리적으로 본 데모크리토스는 로고스적인 정신의 안정을 행복의 기초로 전제한 이성적 지식을 강조하였다. 한편 폴리스, 즉 도시 국가 형태를 가장 분명하게 띠고 있던 에게해 문화권에서는 공동체의 결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 개인의 자유에 근거한 윤리보다는 전체를 위한 집단적 질서가 강조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폴리스를 위해 개인의 모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을 큰 미덕으로 삼았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참된 진리 추구 사상에 나오는 '행복. 덕. 진리'를 통하여 아테네인들의 윤리를 정립하였고, 플라톤은 '조화. 선. 진리'를 통한 윤리를 정립하였다. 이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덕. 행복. 지성'이 윤리학의 과제라고 보았다. 철학자들의 윤리관은 한마디로 행복의 추구를 위한 것으로서 윤리의 가치를 사람이 행복한가의 여부로 결정하려 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정의와 사랑은 '행복'이라고 하는 자아 만족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행복의 추구는 남의 행복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최고선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 한계성을 인정해야 한다. 고래(古來)로부터 행복의 추구가 사상과 철학과 종교와 전쟁과 혁명의 형태로 시도되었다. 행복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으로부터 탈취되기 때문에 불행을 느끼는 계층이 생겨나게 된다. 그들 역시 행복을 위해서 그들 나름의 방법을 추구했지만,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독배' 처럼 쓴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행복 추구에 있어서 남을 불행하게 만든 입장에서 자신의 행복한 상황에 관한 합리적 정당성을 어떻게 내세울 것인가 하는 내적 갈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2. 로마의 윤리사상
로마인들의 기질은 희랍인들과 달리 실리적인 면이 강하였다. 그들은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들 특유의 실리적인 면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철학과 윤리의 관점은 이론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법률도 개인의 이익에 관련된 법이 국가에 관련된 법보다 우선하였다. 그래서 소유권에 대한 법이나 계약에 대한 개인적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다. 로마인들은 희랍의 철학과 발전된 관념적 윤리학을 가지고 실제적이고 개인적으로 잘 적용해서 실용적 윤리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희랍인들이 철학적으로 이론을 잘 세워 놓았다면 로마인들은 행동하는 학문으로 윤리학을 발전시켰다.
3. 알렉산드리아의 윤리사상
희랍의 문명이 로마 제국에서는 실용적인 측면으로 꽃피웠던 반면 알렉산드리아의 '코스모폴리탄'에서는 필론(Philon)에 의해 희랍 철학과 유대교 사상이 접목되면서 후에 기독교 복음과 희랍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일을 처음으로 진행시킨 사람은 클레멘트와 오리겐이었으며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가 그 뒤를 이었다.
1) 클레멘트(A. Clement 150-215)
클레멘트는 신에 대한 바른 지식이 신을 사랑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성육신하기 전에 희랍 사람들에게는 '로고스'로 존재했고, 유대인들에게는 '율법'과 '계명'으로 존재하다가 때가 되매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진리를 아는 것이며 그런 사람을 '지혜자'라고 말했다.
2) 오리겐(Orgen 185-254)
오리겐은 플라톤의 이원론과 스토아주의의 로마의 평등 사상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의 복음을 이에 맞추어 해석하였다. 그는 신의 구원을 인간에게만 국한시킬 수 없다고 하면서 물질계는 물론 심지어 악마까지도 창조주인 신에게도 복귀된다고 하였다. 인간은 이성으로 창조되었으며 이것이 죄로 인해 혼이 되어 육체 안에 머물게 되었고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혼이 구출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하였다.
3) 펠라기우스(Pelagius 360-440)
스토아적 희랍 사상에 기반을 둔 완전한 도덕주의자였던 펠라기우스는 그리스도를 가리켜 인간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에게 선악간에 편견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기독교의 원죄론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 의지의 활동을 강조하고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총보다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행동이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아무리 신적 은총이 풍부하다 해도 사람의 자유 의지 안에서만 그것이 효력을 가진다고 하였다.
4)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
실존적 삶의 과정을 통해서 은총과 사랑의 기독교 사상을 지녔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청년 시절을 매우 문란하게 보냈기에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하여 신의 구원에 들어간다는 것을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신의 절대적인 구원을 체험하고 회심한 후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므로 구하는바 최고선을 얻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 내려져야 한다고 고백하였다. 이 은총이 하나님의 사랑이므로 은총받은 자들이 모름지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였다. '겸손'은 사랑의 덕을 행하는 덕목이며,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은 '자유 의지'를 억압당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의 보장이다. 죄인이 죄의 사슬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의적으로 죄를 짓던 자가 구원받아서 신의 도성에 거하게 되면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태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상태라고 보았다.
Ⅰ.용어 해설
1. 헤라클레이토스(Hercleitos B.C.540?-480?)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에페소스(Ephesos) 왕가 출신이다. 밀레토스(Miletos) 학파와 깊은 관계가 있으나 그는 고고하게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는 "만물은 유전한다"고 말하면서 우주에는 서로 상반되는 것의 다툼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다툼에서 생겨나는 것이 만물이라고 한다. 따라서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왕"이라는 것이다. 다툼 속에 숨겨져 있는 조화(調和) 곧 반발조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로고스라 하였다.
2.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B.C.460-370?)
고대 그리스 최대의 자연 철학자로 트라키아 지방의 압데라에서 출생, 스승 레우키포스의 설을 이어받아 원자론을 대성하였다. 그는 인간의 정신은 가장 정묘한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원자론을 중심으로 한 그의 학설은 유물론의 출발점이며, 그 후 에피쿠로스. 루쿠레티우스에 의해 계승되어, 후세의 과학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 그의 공헌은 수학에까지 미쳤는데, 4면체와 원뿔의 부피는 각기둥과 원기둥의 부피의 3분의 1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3. 소크라테스(Socrated B.C.469-399)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아테네에서 출생하였다. 자기 자신의 '혼'(魂)을 소중히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 날마다 거리의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그 결과 고발되어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재판 모습과 옥중 및 임종 장면은 제자 플라톤이 쓴 철학적 희곡(플라톤의 대화편) 「에우추풀론」,「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파이돈」등 여러 작품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거기에 그려진 죽음 앞의 평정청랑(平靜請朗)한 태도는 생사를 초월한 중대사에 대면하는 철학자가 취해야 할 바를 보여 주는 것으로서, 독자의 마음에 절실하게 파고든다.
4. 플라톤(Platon B.C.429?-347)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형이상학의 수립자이다. 아테네의 명문에서 태어나 젊었을 때는 정치를 지망하였으나, 소크라테스가 처형되는 것을 보고 정계에 미련을 버리고 인간 존재의 참뜻이 될 수 있는 것을 추구, 철학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B.C.385년경 아테네 근교에 아카데메이아(Akademeia)를 개설하고 교육에 전념하였다. 플라톤에 있어서 애지(愛知)는 영혼이 지상의 사물 속에서 천상의 사물과의 유사점을 발견하고, 참실재를 상기하여(상기설), 이를 간절히 소망하는 일이다(에로스설).
5.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322)
고대 그리스 최대의 철학자로,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나, 17세 때 아테네에 진출, 플라톤의 학원(아카데미아)에 들어가, 스승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 가까운, 감각되는 자연물을 존중하고 이를 지배하는 원인들의 인식을 구하는 현실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의 사상적 특징은 소여(所與)에서 출발하는 경험주의와 궁극적인 근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원성, 지식의 전반부에 걸친 종합성에 있다. 그의 학문적인 인식은 사물이 지닌 필연적인 관련을 그 원인에 따라 인식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3단논법의 형식을 확립하여 형식 논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Ⅱ. 보충 자료
고대 윤리사상
1. 소크라테스의 윤리 : 그는 사람들이 먼저 자신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함으로써 참된 진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세 가지의 덕목을 제시하였다.
① 행복 : 행복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있다는 것으로 전인격적으로 이를 찾고 추구해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② 덕 : 인간만이 가지는 사려 분별력과 지혜가 선을 위하여 사용될 때 이를 덕이라고 하였다
③ 지식 : 지식의 결핍 때문에 여러 가지 인간 사회의 문제가 야기된다고 생각하였다.
2. 플라톤의 윤리 : 인간은 이데아의 세계에 속하는 이성과 정욕과 '기개'의 3성품을 가진 존재라고 하였다. 이성과 정욕은 기개에 의해서 다스려져야 하며, 정욕이 이성에 지배될 때 참으로 윤리적인 '조화'(調和) '선'(善), '진리'(眞理)를 윤리의 3요소로 보았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 : 윤리학을 '행복에 관한 학'이라고 하였다.
① 덕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행복이다. 이는 극단적인 초자연주의와 쾌락주의를 거부한 중간적인 입장에 있다.
② 행복 자체가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오직 존재의 목적이 되기 때문에 행복이 최고선이다.최고선은 수단과 목적의 이중 구조가 없으며 스스로 존재의 목적일 뿐이다.
③ 인간의 지성 혹은 이성이 덕에 의해서 활동할 때에 그 인간은 행복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