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하는가? [창4:15]
원죄의 영향 아래에 있는 인간들은 악을 행할 수 있는 소지를 다분히 품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 공동체를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인간들의 악행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가 불가피하다. 어거스틴은 국가의 강제력을 동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인정하였다. 그의 사상은 종교개혁자들에게 이어져 내려왔다. 루터와 칼빈은 사회 질서의 유지를 위하여 국가의 건전한 개입과 압력을 긍정하였다. 그러나 인간존중 사상이 발전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불합리한 제도 아래에서 불법적인 억압과 제재 및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사상이 싹튼 후부터 모든 공적 권력과 억압구조가 제재를 받았으며, 사형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요구되었다. 이에 몇몇 국가들은 사형 제도를 폐지하고, 종신형을 최고형으로 제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형 제도의 찬반에 대하여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는 사형이 부득불 필요할 수가 있으며, 반면에 법적 절차에 의해 사형을 당한 사람이 나중에 정당성이 밝혀지는 오판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성과 한계성을 숙고해 볼 때, 오히려 인간의 최선의 판단과 함께 하나님의 선한 개입을 바라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생명이란 인간의 육신적 존재 형태로서 생리학적인 등가벽 존재이다. 따라서 보호할 가치 없는 생명이란 있을 수 없으며, 국가나 사회적 가치와 생명 가치를 비교한다든지 생명에서 인격 가치를 분리할 수는 없다. 셩경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고 생명의 중요성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사형은 수형자의 생명을 박탈하여 그 사회적 존재를 영구적으로 말살하는 형벌이다. 이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기 때문에 '극형'이라고도 하며 또한 본질상 생명의 박탈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생명형'이라고도 한다.
형벌사는 사형의 역사라고 할만큼 사형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 국가의 형법은 계몽 사상의 영향에 의한 인권존중 사상의 결과 점차 사형의 적용 범위를 제한 내지 폐지하고 있다. 사형 제도와 존폐에 대해서는 형사정책학적, 신학적인 측면에서 많은 논쟁이 있다.
1. 형사정책적 측면에서
1) 사형존치론
사형을 찬성하는 논거로는 대개 사형의 일반 예방적인 범죄 억제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 논거로는 사람을 살해한 자가 그 생명을 박탈당해야 된다는 것은 아직까지 일반 국민이 가지고 있는 법적 확신이라는 점, 법률질서의 유지상으로 보아 중대 범죄에 대하여는 사형으로써 이를 방지하지 아니하면 법익 보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 극악한 인물은 사회에 유해하므로 국가 사회의 방위를 위하여 사회로부터 완전히 말살해야 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2) 사형 폐지론
생명권의 제한은 생명의 박탈이 되기 때문에 이는 법률로 제한할 수 없으며 형벌권보다는 인격권이 상위에 있으므로 사형 제도는 인정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논거로는 ① 사형은 사실상 순간적이고 형벌의 타인에 대해 일반 예방의 면으로 보면 오히려 장기간의 자유 박탈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점, ② 사형은 야만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견지에서 허용할 수 없다는 점, ③ 국가가 사람을 살해한 범인의 행위를 비난하면서 국가 자체가 이를 행하는 것은 응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 ④ 오판에 의한 사형은 영구적으로 구제될 수 없다는 점, ⑤ 사형은 형벌의 개선적 기능 및 교육적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2. 신학적 측면에서
1) 찬성론
신학적 관점에서 응보 이념을 끌어내어 사형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있다. 이들은 구약성서 창9:6과 출21:12,14에서 응보 이념을 끌어낸다. 또한 신약성서 마26:52과 롬13:4로 그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한편 철학적 관점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탈리온(lex talionis)의 원칙에 의해 사형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위하여 국가 권력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국가가 백성의 질서 있고 안정된 삶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칵(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2) 반대론
이에 대하여 기독교의 자연법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 신(神) 창조적 면제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보복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의는 아니라고 한다. 또한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신 점(창4:8-15)이나 모세의 율법이 사형을 인정(창 21장)하였으나 그 율법의 중심은 십계명이고 그 안에 죽이지 말라는 조항이 있으니 사형은 광야 시대의 율법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모세의 율법에 따라 음행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려는 무리들에게 예수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한 것은 사형 사상을 계승하지 않는 예라고 한다. 예수에 의해 선포된 궁극적인 법은 사랑이며 사랑은 정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이라는 점, 구약성서는 신약성서를 통해 그 의미가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면 오히려 사형을 반대하는 것이 신학적 논거라고 한다.
3. 종합적 논의
인간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국가가 추구하는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일 수 없다. 또한 인간 생명은 절대적인 것으로서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가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것은 공동사회의 성원을 보호하여 잘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국가가 국민을 위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형벌을 가하지만 단지 복수나 처벌을 그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절대적 심판은 하나님 한 분만이 할 수 있으며 모든 인간의 악은 상대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 생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창2:21) 세상의 어떤 것(마6:25; 마10:31), 천하보다도(마16:26)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살, 낙태, 안락사, 전쟁이나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 그리고 사형도 사람을 죽인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위적인 침해가 되는 것이다. 보복의 감정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의는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바로 보복이라는 감정은 우리의 의식 아래 뿌리 박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반(反)하는 인간의 타락한 본능으로서 반신적, 반인간적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외와 사랑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인간다운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의 측면에서 사형은 종식되어야 할 것이다. 1977년 12월 국제 엠네스티의 스톡홀름 대회는 "스톡홀름 선언"이라는 사형폐지 성명을 채택하였으며, 1991년 7월의 국제 인권규약의 제2선택의정서에서도 사형 제도의 비인도성과 생명권의 존엄성을 들어 사형 제도를 폐지하고 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으로서 죄악을 멀리하시며 그것을 벌하신다. 그리고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위하여 국가와 권력을 허용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전체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전적인 찬성에 의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 것은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이혼을 허용하신 것(마19:8)과 같은 경우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박탈하는 일보다는 생명을 살리고 풍성케 하는 일(요10:10)에주력해야 하는 것이다.
1. 성경의 사형 제도
구약에서의 형벌 규정은 창세기에 나타나지만 법규범의 성격을 띤 형벌 규정이 나타난 것은 출애굽 이후이다. 모세 율법은 모두 613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형벌에 관한 규정은 출애굽기(21장)와 레위기(20장), 신명기(19장)에 주로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나타난 형벌 규정의 기본 규칙은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최상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사형 방법은 투석, 화형, 참수, 교살 등이 있으며, 잘못된 사형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 절차도 있다. 따라서 구약의 사형 제도는 표면적으로는 복수 형태를 띠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약 시대에 와서도 예수님께서 원수에 대한 사랑(눅6:27,28)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합당한 이유없이, 개인이나 국가가 그 생명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2. 성경에서의 생명 존중
생명 존중의 원리와 중요성은 모세 오경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창4:10,11)화 노아 홍수 후(창9:4-6)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존귀히 여기도록 명령하셨다. 또한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인간은 피와 함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만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렸으면 반드시 그 사람도 피를 흘려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특히 인간의 생명이 존귀하게 여김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창2:7). 구약의 이러한 생명 존중의 중요성은 신약에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을 '온 천하'와 비교하셨고(마16:25,26) 산상수훈의 살인에 대한 교훈에서 살인 행위가 외적인 행위만이 아닌 내적인 감정의 악화를 포함하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그 중요성을 한층 높이셨다(마5:25,26)
3. 형벌권(刑罰權)
범죄에 대한 법효과(法效果)로서 범죄자에게 가하는 법익의 박탈 또는 제재를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형별권이 국가에 독점되어 있으므로, 형벌은 곧 공형벌(公形罰)만을 뜻한다. 형벌의 대상은 사람에 한정되어 있으며, 동물이나 자연 현상은 그 대상이 아니다. 현행 형법을 형벌이라 하지 않고 형(形)이라는 용어로 쓰고 있다. 형벌의 종류에는 생명형·신체형·자유형·명예형·?瀯鉞?등으로 구별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 형법은 생명형인 사형, 자유형인 징역·금고·구류, 재산형인 벌금·과료·몰수, 명예형인 자격상실·자격정지 등 9가지를 인정하고 있다. 이중 몰수 이외의 형은 독립하여 선고 할 수 있는 주형(主形)이며, 몰수는 다른 형벌에 부가하여서만 선고할 수 있는 부가형이다.
4. 인격권(人格權)
권리의 주체와 분리할 수 없는 인격적 이익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를 말한다. 즉 생명·신체·자유·정조·성명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권(私權)이다. 민법은 타인의 신체·자유·명예를 침해하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소극적으로 그 보호를 규정할 뿐이고 그 이상의 규정은 없다.
반면 타인의 성명이나 초상의 무단사용, 정조의 침해, 생활방해 등의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면 불법행위가 성립된다. 스위스 민법의 경우 인격권을 인정하고 타인의 침해에 대한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5. 탈리온(lex talionis)의 원칙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한다는 보복의 법칙으로 반좌법(反坐法)·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이라고도 한다. 이 법칙은 함무라비 법전에 규정되어 있고,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써"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는 가해와 복수의 균형을 위하여 응보적 정의감을 만족시키려는 것으로, 가해자측의 재 복수는 허용되지 아니한다. 특히 이 법은 고대 국가가 형성되고서 그때까지 무차별·무제약적으로 행사하였던 집단적 복수로부터 가해자 개인에 대한 복수라는 관념이 나타남에 대해서, 제재도 피해자가 입은 해와 동일한 보복으로 법률을 정하여 제정한 점이 매우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 법은 응보 원칙의 가장 소박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원시 미개인의 사회규범 중에서 볼 수 있는 정의관념의 원시적 표현인데, 무제한 복수를 허용하던 단계에서 동해보복의 정도까지 보복을 제한하여 권력적 질서하에 둔 것은 큰 진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응보형의 순수 이념형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