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예수님의 제자, 12사도들의 사역
예수님의 제자, 12사도들의 사역
9. 시몬(알패오와 클레오파스의 마리아의 아들, 소야고보의 형제)
시몬(히브리어: שמעון)은 "응답하셨다" 또는 "들으심"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주의 정당인 혁명당원(zelotes)이었습니다
시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알패오와 클레오파스의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소야고보와 형제관계라는 것입니다. 시몬은 가나안에서 태어나 자랐으며(마태복음 10:4), 사도가 되기 전에는 바리새파로 구성된 극단적인 유대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열심당의 일원이었으며, 마카베오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로마제국으로부터의 유대인 해방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과 그들에게 순종하는 동족 유대인들에 대해서 동료들과 함께 약탈과 살인 등 테러와 비슷한 공격을 자행하였습니다. 또한 열심당은 장차 예언에 따라 메시야가 이 땅 위에 강림하면 군대를 이끌고 로마 제국을 몰아내 조국을 해방시켜 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라한 행색을 한 예수를 결코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결국 두 세력은 극과 극으로서 충돌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 동료였던 시몬은 예수의 설교와 기적을 듣고 본 후 감화되어 열심당에서 탈퇴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또한 성실하거나 피동적으로 순종만 하는 사람들만 제자로 맞아들이기보다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을 포섭하고자 했기에 자신에게 오는 시몬을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에 순종했던 과거를 가진 마태와 로마 제국에 반대했던 극단주의자 시몬을 모두 자신의 제자로 맞아들임을 통해서 서로 상반된 이념으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고자 하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시몬은 이집트에서 선교를 한 후, 유다 타데오와 함께 페르시아 지역으로 가서 선교 활동을 벌였는데, 예수님에 대하여 설교한 후 그 곳의 신상을 파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격분한 이교도들은 그를 포박한 후 죽였는데, 시몬은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 사타구니에서부터 머리까지 톱으로 육신이 두 동강이 나는 형벌을 당하여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0.유다(야고보의 아들, 다대오)
유다(Θαδδαῖος, ? -62년?)는 ‘존경받는’ 또는 ‘찬미하리’라는 뜻을 지닌 예수님의 제자로서, 야고보의 아들이며 다대오(마음이 크고 넓다라는 의미의 이름)라고도 불려지는 사도입니다 소(小)야고보와는 형제 관계이며,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유다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그를 유다라고 부르고 있지만(누가복음6:16, 사도행전 1:13),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그를 다대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그에 관한 언급은 유일하게 사도들의 이름을 나열할 때 뿐인데, 전체적으로도 4번밖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당시 유다는 예수님께 “주님, 주님께서 왜 세상에는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고 저희에게만 나타내 보이시려고 하십니까?” 라고 질문하기도 하였습니다(요한복음 14:22).
전설에 의하면, 성령 강림 이후 유다는 시몬과 함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페르시아제국 지역으로 가서 선교 활동을 하는 가운데 그곳의 신상을 우상제물이라 하여 파괴한 까닭으로 현지인들의 폭력으로 사망하였는데, 어떻게 순교하였는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전설의 내용이 함께 사역을 한 시몬과 유사한 점들을 미루어 보아 순교하였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11. 야고보(알패와 마리아의 아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히브리어: יעקב, 그리스어: Ιάκωβος, 라틴어: Iacobus, ? ※62년)는 알패오와 마리아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고보라는 이름은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다른 사도인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동명이인이라 혼동을 피하기 위해 흔히 ‘소(小)야고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야고보들 사이에서 진실을 찾아내기가 무척 어렵고 전해내려져 오는 전설 또한 중복되거나 유사한 경향들이 너무나 많이 있어서 야고보의 행적은 찾기가 어렵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야고보(세베대의 아들) 사도와 마찬가지로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를 위하여 헌신을 다하였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결같은 삶을 살았고 그들이 가는 곳에는 항상 그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었으며 복음의 영향력 또한 적지 않았음을 비추어 볼때 아무런 흔적없는 삶을 살며 세상으로 돌아간 것은 결코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야고보는 그를 시기하고 경계하던 바리새파에 의해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리새파는 부활절, 야고보를 강제로 예루살렘 성전에 끌고 가 각종 감언이설로 배교할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고보가 끝끝내 배교를 거부하며 저항하자 화가 난 바리새파는 그를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린 다음 돌로 쳐 죽임으로서 순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2. 가룟유다(유다출신으로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넘긴 자)
가룟유다(히브리어: יהודה איש קריות) 또는 가룟 사람 유다는 유대 출신으로 가룟 시몬의 아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나 나중에 예수를 배반하여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죄인이자 사탄의 하수인이요, 배신자의 대명사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가룟'이란 말에는 '가룟(남부 유대의 지명) 사람' 외에 '암살자', '가짜', '위선자', '거짓말장이', '단검'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가룟 시몬의 아들이며,예수 그리스도에게 선택받은 12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수학적 재능이 우수하여 사도단의 회개와 재정을 맡으면서,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공금을 횡령하기도 하였습니다.
요한 복음의 다른 기록에는 베다니 지역의 마리아의 집에서 그녀가 값비싼 삼백데나리온(노동자 1년연봉) 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는 헌신을 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됩니다 이것을 본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비싸게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는가”라고 하며 마리아를 책망하였는데 그것은 실제로 가룟유다의 가난한자에 대한 진실된 마음이 아니라 횡령을 마음에 둔 발언으로 위선적인 태도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도리어 가룟유다를 책망하며 “왜 이 여자를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들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들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경고의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오히려 마음에 심히 격분하여 당시 유대교의 대사제(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제가 예수를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여러분은 제게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하고 예수를 그들에게 팔아 넘길 것을 제의하는 결코 돌이킬수 없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천금과 같은 제의를 받은 제사장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가룟유다에게 은 30개를 보상금으로 제의했습니다 당시의 시세로 은 30은 로마의 노예가 황소에게 받혀죽었을때 주인에게 지불하던 보상금액으로 가룟 유다의 스승에 대한 사고와 가치관이 어떠했슴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무교절이 시작되는 첫날이자 목요일 밤에 일어난 최후의 성만찬에서 예수는 자신의 죽을 때가 임박해 오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암시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사도들이 식사를 하던 도중에 “내가 진실로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는 폭탄선언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에 사도들이 모두 근심하고 두려워 떨며 부인을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연이어 “나와 함께 접시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다음 빵 한 조각을 들어 가룟 유다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에 가룟 유다가 그 빵을 받자마자 사탄이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갔고 가룟유는 회개의 기회마져 잃어버린채 망언의 행위를 향하여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스승의 이러한 마지막 경고의 메세지를 뒤로한채 너의 일을 행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악행에 동참하였습니다
최후의 만찬이 끝난후 예수께서는 11명의 사도들과 같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마지막 눈물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가 다 끝났을 때 가룟 유다는 제사장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가 입맞춤을 하였고 바로 그자리에서 예수는 체포되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에 의해 체포된 예수에 대한 형 집행은 신속하게 처리되었고, 산헤드린 의회는 최고형인 십자가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를 데려가 집행을 보다 빠르게 마무리 하여 줄것을 유다백성들과 함께 선동하며 강력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때늦은 후회를 하며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면서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은 30개를 돌려 주며 “내가 죄 없는 사람을 팔아넘겨 죽게 만든 죄를 범하였다”라고 간청하며 석방을 요청했지만 “그게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네 일이다” 라는 돌이킬수 없는 반응만 돌아왔습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가롯 유다는 그 은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나와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였고, 대사제들은 이것을 주워다가 나그네들을 위한 묘지용 토지를 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대제사장들이 구입한 묘지용 토지에서 가룟 유다가 자살했다고 하지만, 사도행전에 의하면 가룟 유다가 자살한 피밭이라고 불리게 된 곳은 나그네들이 객사하면 묻어주려고 산 땅이 아니라,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회계를 맡고 있을 3년동안 횡령한 돈으로 산 대 농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증거로 대사제들이 산 나그네 묘지용 토지는 작은 밭(헬라어로 아그로스)이었고, 가룟 유다가 죽은 피밭은 대농장{헬라어로 코리온)이었습니다 가난한 예수공동체 일원이었던 가룟 유다가 대농장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누가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사용한 생활비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재산을 들여서 예수의 복음증거에 봉헌을 했기 때문이다.
2006년 복원된 영지주의자들의 복음서인 가룟유다복음에 의하면 가룟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의 비밀에 붙여진 요구에 의한 것이었고 이러한 가룟유다의 행위는 인류사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스토리라는 억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가치한 복음서들의 출현은 당시 여러곳에서 수없이 복사되고 미화된 사례들로서 일고의 가치가 없는 복음이라는 이름이 더렵혀지는 사악한 서적이라는 것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택하셨고 그를 제자로 불러 쓰신 엄청난 축복의 기회자였지만, 그것을 한순간에 팽개쳐 버리고 세상의 몰락과 유흥을 좇아갔던 최악의 인간형이라는 데서 우리는 우리안에도 이러한 사악한 생각이 없는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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