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오리아(D’Auria)의 소설 중에 명 배우인
케리쿠퍼 주연으로 더욱
유명해진 영화로 ‘하이눈’(High Noon)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보안관은 마을의 법질서를 사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늘 악당들은 그의 생각과 반대로 법질서를 무시하고
마을을 공포 속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인 보안관은 악당들과의 결투를 앞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함께 악당들과
싸울 사람을 구하면서 이렇게 도움을 간청합니다.
“저는 총 잘 쏘는 사람을 구하지 않습니다.
네가 필요한 사람은 “ 이 일이 나의 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 명도 나서지 않습니다. 결국 보안관은 혼자서 결투를 벌이게 됩니다.
“이 일이 나의 일이다” 라고 믿는 사람이 마을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이 나의 일이다”라는 말은
“내가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다” 는 뜻을 말합니다.
비록 총을 잘 쏘지 못한다 할지라도/ 비록 공부를 잘 못한다 할지라도
비록 배운 것이 없다 할지라도/ 비록 갖은 것이 없다 할지라도
비록 건강이 좋지 않더라도………
“나는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
일이 나의 일이다”.
“이것은 내가 해야만 한다”는 그런 열정으로 일 하는 자에게는
세상이 감당할 자가 없는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며 그들을 잔해하기 위하여
전 국토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던
유대교의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그 순간부터
그의 생명은 이미 다메섹 도상에서 죽었고
지금의 생명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생명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그렇습니다. 바울은
“나는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 일이 나의 일이다”.
“이것은 내가 해야만 한다” 는 그런 열정으로 '복음
선교'를
고귀한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 굶고, 매 맞고, 도망
다니고,
옥에 갇히고, 죽을 고비를 수 없이 넘겼습니다.
몸의 할례[남근]을 자랑하던 갈라디아의 유대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이제 이후로는 “나를 괴롭히지 마라
내 몸에는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뿐만 아니라, 도망 다니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후로는
“이 일은 나의 일이다” “이것은
내가 해야만 한다”는
사명을 발견하고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주를 향한 열정적인 사랑이 있었고
그들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가득했었고
그들의 눈에는 주의 눈물이 가득했었습니다.
비록,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끝까지 다짐하면서……
그들의 입술에는 죽는 날까지 찬양의 향기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삶까지 예수의 흔적 남겼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어려운 악천후 속에서도
그렇게 불타는 인생을 살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더라도
어떠한 사고를 당할지라도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겠노라는
“십자가의 삶” “순교자의 삶” 이었습니다.
행 20: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사람이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이 사역은 우리 모두가 똑같지 않으며
또 우리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사역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어떤 이는 교회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어느 곳에 무슨 사역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특별한 임무를 주십니다. 임무라기보다는 “짐” 이라는 표현이 더 가깝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사역을 맡겨주실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사역과 함께 지워주시는 짐이 있습니다.
그 짐은 우리 “마음의 짐” 뜻합니다.”사랑의 짐” ”희생의 짐”입니다.
희망이 없는 이들을 위하여 동정심을 …….
남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그래서 어떤 사람은 ‘중보의 기도는 우리의 무릎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소망과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쓰러져가는 영혼과 어려운 교회가 여러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순간에도 수 많은 영혼이 예수를 만나지 못하여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제자들의 순교와, 사도 바울의
열정적 희생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영생의 축복과 천국 복음”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큰 빚진 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 인으로서의 거룩한 책임과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에게 편리할 때만 또는
자기의 계획에 알 맞는 때에만 봉사하려고 합니다.
참된 봉사란 때와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거룩한 부담을 갖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그곳이
참된 봉사가 이루어지는 사역 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을 살려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여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을 살려는 자들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가야 합니다.
그런 자만이 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기에 주님 앞에 거듭난 12명의 참 제자는 온 땅을 복음으로 정복했습니다.
오늘의 현대교회는 모두 제자훈련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성경지식도 상당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께서 원하시는 제자는 얼마나 될까요?
여러분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제자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몸에서 이런 증거물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마음에는 늘 주를 향한 사랑이
가득해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대화에는 늘 주가 주신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늘 주의 눈물이 가득 채워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손에는 늘 주를 닮은 섬김이 있고
우리들의 입술에는 늘 찬양의
향기가 넘쳐서
우리들의 삶에 늘 주의 흔적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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